서재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2018)

도미니크 2021. 9. 27. 23:56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저자 소개

김영민 저자님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며 동시에 칼럼니스트이다. 그 나이대 한국 남자들이 하는 것들은 거의 하지 않는다. 동창회나 경조사에 잘 나가지 않는다. 몰려다니며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에 가지 않는다. 그보단 디저트를 먹으러 가는 편이다. 그리고 미술관과 영화관도 즐겨 간다. 특히 개봉한 영화는 웬만하면 챙겨 볼 정도로 좋아한다.

연구자로서 작가님은 학문을 넘나들며 의견 나누기를 지향한다. 한 예로 국문학계에서 벌어진 논쟁에 정치학자의 관점에서 참여한 적이 있다. 즉 국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이 국문학자들이 풀이한 해석에 대해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학자란 진리를 추구해야 해!'라는 작가님 철학을 보여준다. 진리를 알아내려면 다양한 전공자들. 다양한 관점으로부터 맥락까지 읽어 낼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글에 대해선 '지루하지 않아야'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집필 할 때도 리듬 있게 읽히도록 쓰려한다. 책은 사서 보는 편이라 한다. 이유는 인덱스를 하기 위해서다. 만약 인덱스 할 필요 없는 책이라면 그만큼 교수님에게 실망스러운 책이란 뜻이다.

책 소개

제목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이지만 죽음에 대한 책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일상, 사회, 학교, 영화 등 작가님 본인이 애정 하는 것들에 대해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목차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일상에서
2부: 학교에서
3부: 사회에서
4부: 영화에서
5부: 대화에서

보다시피 주제를 하나로 특정할 수 없는 폭넓은 에세이 혹은 칼럼집이라 보면 되겠다.

그럼에도 제목을 이렇게 붙인 이유는 뭘까. 추측컨대 이 모든 글이 아침에 죽음을 생각한 뒤에 쓰였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교수님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을 좀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으며 침착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도 그렇게 주변을 응시하고, 더 느리게 생각한 뒤 쓰셨을 테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무거워 보이는 제목과 다르게 재미있다. 어떤 주제를 가져와도 글은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저자는 교수님이다.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와 여운을 함께 던져주시고 글을 마무리 짓는다.

책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교수님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 칼럼 한편을 읽어보길 바란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인데 검색하면 바로 볼 수 있다. 참, <위력이란 무엇인가>라는 글도 추천하다. (교수님은 OO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을 즐겨 쓰시는 듯하다.) 칼럼을 읽고 난 뒤에 라면 이 분의 칼럼을 모아 출판한 이 책에 자연스레 관심이 갈 것이다.

문장 수집

[1]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 평생 원했으나 가질 수 없었던 명예에 대한 아쉬움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면, 영원히 살 것처럼 굴기를 멈출 것이다. 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행성이 충돌하는데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6pg)

▶ 교수님도 어려운 시절이 오면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고 한다. 어떤 문제든 죽음 앞에서는 다 찰나의 것이 된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을 내려보는 일과 비슷한 거 같다. 모든 고뇌가 다 작은 점이 되어버린다.



[2]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상처 입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주변 사람의 죽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유한함을 알게 되는 이러한 성장 과정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확장된 시야는 삶이라는 이름의 전함을 관조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中)

▶ 경험과 상처. 이 두 요소가 성장의 근간이며 성장해야만 이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작가님이 상처가 없는 인생을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라고. 용기가 없어 망설이다가 끝난 인생이라고 말해주셔서 위로가 되었다.



[3] 나: 아이를 낳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 낳는 것이 좋습니까?
子曰: 모른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고, 겪은 사람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려 들 것이다. 다시 태어나서 아이를 낳지 않아보기 전까지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이를 낳는 것은, 대체로 세상에 뿌리를 내리는 한 방법이다. (자식에 대한 세 가지 에피소드 中)

▶ 요새 내가 아기를 한창 키우고 있어 더 와닿았던 문장이다. 나는 뿌리를 내렸다. 적어도 훗날 '내가 아이를 낳았다면 어땠을까? 내 아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같은 공상 할 일은 없어졌다. 많은 걸 경험하면 힘들지라도 삶이 더 다채롭고 풍요로워지는 듯하다. 그래서 일단 겪어보자는 주의다. 모험을 해보는 거다.



[4] 결혼생활은 그와는 다른 별도의 역량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 역량은 다름 아닌 연민의 능력입니다. (...) 노화를 겪는 생물체의 고단함과 외로움과 무기력함을 생각하면, 자신과 배우자에 대해 연민이 샘솟을 것입니다. 그렇게 연민을 가질 때, 사람은 비로소 상대에게 너무 심한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결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이들을 위한 세 가지 주례사 中)

▶ 정말 맞다. 연민 없이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순 없다. 상대방에게 따뜻해지려면 결국 저 사람도 많이 힘들구나. 고단하구나. 알아줘야 한다. 연민도 사랑에 포함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포함되지 않는다면 '결혼에는 사랑보다 연민이 더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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